1909 -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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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해리선교사
운영자 2016-04-11 추천 1 댓글 0 조회 1182

부해리선교사


 

‘대구·경북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헨리 먼로 브루엔의 초상사진. 키가 크고 잘 생긴 미남형이다.
 
브루엔이 그의 한국어 교사 이내경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갓을 쓴 모습이 이색적이다.
 
브루엔이 1900년대 초 김천지역에서 갓을 쓴 노인에게 쪽지복음을 전하고 있다.

 


부해리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는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한번 만난 사람의 얼굴은 좀처럼 잊어버리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 우리 두 사람(부해리와 현거선)이 같이 시골길을 가고 있었는데 마침 여러 명의 사람들이 우리 옆을 지나갔다. 이때 부해리가 갑자기 돌아서더니 한 사람을 불렀다. “김영태씨 ! 안녕하십니까 ?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잠시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눈 다음 우리는 다시 길을 걸어갔다. 부해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까 그 사람은 내가 17년만에 처음 만난 사람입니다”.
  부해리는 한국어로 성경 말씀을 인용하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다. 예배 시간에 성경 봉독 순서가 되면, 그는 강대상 앞에 나가 봉독할 성경 구절을 먼저 말하고 교인들에게 성경을 찾게 한다.(당시 한국 교인들은 성경, 찬송을 늘 지니고 다녔다). 교인들이 성경 구절을 다 찾고 나면 부해리는 성경을 보지도 않고 그 구절을 모두 외워서 낭독하였다.
  부해리는 또한 교인들을 만나면 그때, 그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성경 구절을 들려주는 습관이 있었다. 나(헨더슨)는 부해리와 여러 해 동안 대구 선교기지에서 같이 일하고 지냈지만 한번도 화를 내거나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정적이었고, 결코 위선적이지 않았다.
  그는 진실로 기도하는 사람이었으며, 깊은 경건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모든 선교사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그는 전도를 다닐 때는 자전거를 이용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자전거가 매우 귀하여 이를 '안경말' 또는 '비거(飛車)'라고 불렀다. 워낙 자전거가 신기하여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기회를 이용하여 다음과 같이 전도를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놀라운 기계들이 하나님을 존경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옵니다. 사람은 자기가 믿는 것 같이 됩니다. ...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처럼 기술있는 사람이 됩니다.”

         
                                                
 
부해리 선교사 전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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